공대생

title 기록하는 자, 기억하는 자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

 

 

 

저는 어떻게 실험을 하지 않아도 물 분자는 육각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또한 어떻게 눈은 결정이 모두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요? 바로 이것은 기록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기록한 사람은 현재나 과거에 산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의 연구결과를 글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글로써 알고 기억합니다. 바로 우리는 기억하는 자들입니다.

저는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중 두 이야기를 소개해 보려 합니다. 첫 번째는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입니다. 허생전은 주인공 허생이 부인의 닦달(돈 좀 벌어 와라)로 시작합니다. 그는 집을 나온 뒤 서울에서 최고 부자인 변씨한테 갑니다. 그리고 1만냥을 빌려달라고 하지요. 변씨는 상거지 꼴인 허생을 믿어줍니다. 왜냐하면 구차한 변명으로 소심한 사업을 한 사람들과는 전혀 달라 보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부끄러운 구석이 없고 전혀 비굴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그 돈으로 과일을 독점하기 시작합니다. 부르는 대로 주고 흥정을 하여 비싸게 주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독점이란 가능하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조선은 물류가 제대로 유통되지 않았습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보면 수레를 사용하여 물류를 활발하게 유통시켜 상업을 발전시켜야 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바로 허생전에도 그 내용이 나오지요.

과일을 독점하고 난 뒤 제사상을 올려야 될 시기가 됩니다. 과일이 없어 과일장수들이 쩔쩔 매지요. 과일장수들은 허생에게 자신이 판 가격의 10배로 과일을 삽니다. 허생은 말총, 유자, 호미 등을 모조리 사버려 똑같이 되팝니다. 그렇게 그는 돈을 모읍니다.

그리고 마카오와 나가사키 중간에 있는 무인도에 갑니다. 그는 해적들에게 한 명당 100냥 씩을 줍니다. 결혼 할 여자와 소를 구해오라고 합니다.

해적들과 그의 아내들 및 소들을 실은 배는 무인도에 도착하여 밭을 일굽니다. 나가사키 즉 장기도에서 흉년이 들어 곡식이 모자라게 됩니다. 3년동안 모은 곡식을 장기도에 팔자 100만냥을 얻게 되죠. 허생은 사람들에게 떠난다고 말을 하며 새로운 문자와 인륜에 대해서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떠날 때 글은 모름지기 재앙의 근원이라며 글을 아는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떠납니다. 또한 100만냥 중 50만냥을 버리고 떠납니다. 조선 땅에서는 100만냥을 다 쓸 수 없다며 말이죠.

글이 재앙의 근원이라... 참 심오한 주제입니다. 아마 이것도 사대부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로 사람을 저주하고 글로 사람을 죽이는 그런 피 튀는 작은 전쟁을 보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돌아 오고 난 뒤 허생은 변씨에게 돈을 갚고 백만 냥을 어떻게 벌었냐고 묻는 말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오. 우리 조선은 외국과 무역이 적고, 수레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지 못하는 까닭에 모든 물건이 한자리에서 나고 한자리에서 소비되지요.

열하일기에서 나온 수레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됩니다.

수레는 물건을 빠르게 유통 할 수 있는 획기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수레가 지나갈 길이 마땅치 않고 도량이 일정하지 않기에 잘 쓰이지 못한다고 말을 합니다.

변씨부자는 허생의 가치를 알아보고 어영대장(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보좌관)에게 허생을 만나 보라고 소개 시켜줍니다. 허생은 어영대장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해 줍니다. 하지만 어영대장은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에 청나라에게 치욕을 되돌려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소개 합니다. 그러자 “사대부 들이 모두 몸을 삼가고 예법을 지키는 마당에, 누가 제 자식의 머리를 깍고 되놈 옷을 입히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허생은 반박하며 “그 사대부란 놈들이 도대체 어떤 놈들이냐? 의복은 온통 희게 입으니 이것이 상 당한 사람의 옷차림이요, 머리톨을 한데 묶어 송곳처럼 상투를 트니 이것은 남쪽 오랑캐(흉노..)들의 풍습이 아니냐? 그러면서 무슨 예법이네 어쩌네 하면서 주둥이를 놀린단 말이냐? 그 뿐이냐? 장차 말타기, 칼 쓰기, 창 찌르기, 활쏘기에 돌팔매질까지도 익혀야 할 판국에 그 넓은 소매 옷을 고쳐 입을 생각은 않고 예법만 찾는단 말이냐? 라며 분노 합니다. 허생은 옆에 칼이 있었으면 당장 어영대장을 죽일 기세로 말을 합니다. 어영대장은 허생이 무서워 뒷걸음칠 하며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박지원은 바로 이 책을 기록한 자입니다. 저희는 그것을 기억하는 자입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면 후대의 사람들은 기억조차 할 수 없습니다. 박지원은 사대부와 조선의 유통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합니다. 너무나도 우스운 이야기들 이죠. 상을 중요시한 일본은 1800년대부터 상업이 고도로 발전하여 지금의 일본이 만들어집니다. 그와 반면에 계속 사()만 중시합니다. 결국 그 전까지 일본 보다 문화가 발달 되어 있다고 생각하던 조선은 일본에게 추월당하죠.

박지원에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지원은 실학자입니다. 실학자는 두 부류가 있는데 농업을 개혁해야 해야 한다는 것과 상업을 개혁해야 한다는 두 부류죠. 박지원은 실학자의 관점으로 직접적으로 사대부를 비판합니다. 사대부들의 입장에서 아주 곤란한 글을 써 버립니다. 목숨을 건 붓을 들었죠.

기록을 하였기에 우리는 기억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며 조선시대의 유통과정과 사대부들의 허례허식을 비판 한 박지원. 우리는 그의 노력 덕분에 이 상황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글로 말이죠.

기록하는 자는 목숨을 건 행동까지 합니다. 붓은 칼보다 강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글은 무력보다 강하다 라고 할 수 있지요. 바로 기록하는 자가 무력으로 짓누르는 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 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잊혀지면 안 될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억하는 자입니다. 기록한 자가 주는 그 교훈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역사의 과오는 단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실수를 되풀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고 성공을 되풀이해야 합니다. 기억하는 자가 우리에게 전력을 다해 전달 해준 바통을 우리는 후대에게 다시 물려주어야 합니다. 기억은 전달되는 것입니다. 바로 기억으로 말이죠. 후대에게도 그 교훈을 남겨주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기록하며 기억을 합니다.

기록이란 전달하고 싶은 자의 소망입니다. 기억은 그 간절한 마음을 전달하는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그 기록을 전달하며 기억을 간직하고 다시 전달해주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중간에 끊겨 버린다면 그 상황이 와도 더욱 큰 문제로 바뀌는 상황이 올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하겠습니다. 당신은 기억을 전달하실 건가요? 아니면 후대에 전달하실 건가요? 당신의 선택 하나가 어쩌면 소소하지만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자 두 가지 경우 밖에 없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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